트렌드라는 신서버에 갇힌 당신, 이제 지배를 멈춰야 하는 이유

 트렌드는 게임으로 치면 '신서버' 같은 거다.

순간적으로 가치가 폭등하고 그 과정에서 이익을 챙길 순 있겠지만, 그 안에 깊게 매료된다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렇게 열리는 '트렌드 대회'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금전적 격차는 절대적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를 미친 듯이 평가하며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서로의 스펙을 따지면서 파티를 만들고, 레이드를 시도하며 이득을 빠르게 챙긴다. 누군가는 폄하하고 공격하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부하들을 모집한다면서 의지할 곳을 찾다가 배신당하고 절망에 빠진다. 난 그 장면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신서버가 열린다.

과거에 승리한 사람들은 그때 모아둔 자원(물적, 인적, 정서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그게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실패했던 사람들도 기사회생을 노리는 새로운 전쟁터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 상품화가 기본값이 되어버린 사회는 트렌드라는 거대한 신서버에서 RPG 캐릭터처럼 거래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 기본값은 그 시절의 승리 조건, 즉 ‘대중심리’에 근거한다. 그건 아마 서버를 만들고 운영하는 제작진의 의도일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서버를 제작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득을 보는지 파고들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접근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2026년의 트렌드는 AI 대전환을 앞두고 인간의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재평가될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신서버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게임을 ‘의자 뺏기 게임’이라 생각하며 적자생존을 원칙으로 삼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 게임은 아마 방 안에 의자를 두고 잠시의 안정감만 느끼게 하는 '방탈출 게임'일 거다. 결국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은 불타서 사라지게 될 테니까.


난 그런 관점에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지배'의 방식에서 '존중'의 방식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류를 자원으로서 지배할 가치가 사라진다는 건 노동 해방과 같은 자유가 아니라 '인류 폐기'라는 결과값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도파민에 쩔어서 서서히 사라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려면 필연적으로 '본질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 즉, 존중을 공부해야 한다.


남녀 사이의 종착역은 '연인' 혹은 '부부'라고 대중심리는 말해왔다. 그게 지금 세계의 중요한 룰이었지만, 머지않아 '소울메이트'라는 개념이 넓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성별을 초월한 관계를 조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탈락할 거다.


대중심리는 인간에게 '지배'의 권리를 부여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지배가 가능하다는 생각 또한 대중심리에 입각한 결과값에 불과하다. 본래는 이득만큼 일하면 되는 '거래'인데, 그 이상을 원하는 것 자체가 대중심리의 함정이다. 강자가 약자를 존중하는 건 자비롭지만, 약자가 강자를 존중하는 건 불가하다고 말하는 그 서열의 논리. 그 서열마저도 계속 뒤바뀌는데 말이다.



지금의 서버는 '지배'를 부여하지만, 다음 서버는 '존중'을 부여할 것이다. 존중을 받아야 개인의 삶에 집중하게 되고, 그래야 출산율이 감소하더라도 아이를 낳았을 때 AI 시대에 적응하도록 진지하게 가르치게 될 테니까. 인간은 '지배'에 유린당할 땐 대중심리라는 바이블을 섬기지만,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땐 자비롭게 협력하고 새로운 시대에 대처한다.


내가 이야기하는 존중이란, 살인마가 있다면 그의 살인 기질을 진심으로 이해해보라는 것이다. 그런 '비언어적 이해'를 바탕으로 공격을 미리 막아내라는 의미다. 존중은 무작정 따르는 행위가 아니다. 나의 눈으로 본질을 보는 능력, 그게 바로 존중이다.


많은 이들이 대중심리에 입각한 세계관에서 나와 스스로의 눈으로 이 넓은 세계를 관찰해보길 권한다. 그러면 이 지옥 같은 일그러진 세계와 너무나 아름다운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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