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서 부부가 되면 사이가 격하되는 특이한 '드라마' 각본 같은 역할극 심리, 어른이 되지 못한 착한 아이들의 집착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심리적 특징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역할극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가장 핵심 쟁점은, 그 역할극 안에서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그 역할을 수행해줄 것을 원하면서 동시에 '연기력' 평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연기력'을 '진정성'으로 무의식적인 치환을 거듭한 끝에 그게 현실적인 삶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육체는 '현실'이라는 야생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은 아마도 어떤 역할극 안에서 보상을 '스스로 부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리가 바뀌면 사람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상은 군대나 기업과 같은 서열 중심의 위계질서 사회에서 정말 흔하게 목격된다. 필요 이상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휘두르는 그 모습은 그 사람의 '본연의 자아'가 그 자리가 부여하는 정체성 보다 취약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특징은 연애나 결혼, 심지어 친구와 같은 형태의 인간관계에서도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사이는 '이런 것' 이라는 드라마 각본이 있다. 그리고 그 각본과 어긋나면 그건 사랑이 아닌 것이다. 정말 흥미로운 사실은 남편은 아내에게 공격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극본'이 여러 드라마에서 상영되고 흥행하니까 실제로 일반인들이 그걸 따라하면서 당연하게 인식하면서 만족해한다는 것이다. 난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외부에서 '대중심리'에 입각해서 조성된 드라마 각본을 많은 착한 아이들이 따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의 행복과 절망감 모두가 그들 스스로의 손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그리고 뭔가 얻어나가면서 이뤄가는 그 모든 장면을 아름답게 생각한다. 그런데, 내 시야에서 '대중심리'를 악용해서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만들어내서 '극본 안에 소속'하게 만드는 행위는 지극히 이질적이며 아름답지 못하다. 


이야기를 흥행하게 위해서는 원래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을 만들어야 된다. 남자가 악마여야 여자가 천사가 된다. 실질적 사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로마의 병사들이 사실 예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였고, 사탄이라는 '악'의 상징적인 등장인물이 예수가 하자는대로 하는 인물이었다면, 성경이라는 거대한 스토리가 정말 흥행했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만약 존재했더라도 볼드모트가 그저 좋은 사람에 불과했다면 이 이야기는 흥행했을까?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난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원하지 않은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가서 그 안에서 배역에 따라서 '강제로 연기하도록 유도되는' 상황에 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 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이 그걸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으니까. 


성인은 본래,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의지를 통해서 자신의 두뇌 메커니즘을 변경 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설령 고통이 따르더라도 나아가고 나아간다. 나는 그 과정을 용기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용감한 사람들을 정말 좋아한다. 



어떻게 해야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역할극을 그만두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나가는 장면을 목격 할 수 있을까? 난 그 장면을 보고 싶다. 그건 아마도,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이해에서 부터 출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은 '비언어적 대화'가 가능한 존재다. 누군가가 남긴 '비언어적 메시지'에 의해서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걸 언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속박을 부여함으로서 우리 인간은 비언어적 세계를 자유롭게 거닐지 못하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비언어적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아직까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았던 훨씬 더 아름다운 장면이 일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지 모를 사람 일 뿐이지만, 어떤 누군가가 스스로의 인생을 진정성 있게 찾아나가는 사람들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나도 그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Previous Post